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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 통제 논의의 배경

by 바코크 2024. 2. 26.


오늘은 관료제 통제 논의가 나타나게 된 배경을 '실적과 책임 간의 긴장' 및 '행정국가화 현상'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통제와 책임의 개념에 대해 검토해 보고, 행정의 책임과 통제에 대한 고전적 논쟁과 정부 관료제 통제의 유형론 등 이론적 논의를 각각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실적과 책임간의 긴장

정부 관료제 통제 및 책임의 주요 내용은 정무직 공무원(대통령, 의원, 장관 등)과 행정 공무원 간의 관계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집단간의 관계는 행정관료 '통제를 통한 책임의 확보'와 '유능한 관료 충원 및 정치적 자의성으로부터의 보호'라는 두 주장 간의 긴장으로 정리될 수 있는데요, 근대적 행정연구의 효시가 된 미국의 경험은 이러한 긴장을 잘 보여줍니다.

미국의 엽관제는 제퍼슨 대통령과 잭슨 대통령을 거쳐 그 후임 대통령들을 통해서 확대되었고, 1860년대 중반에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승리에 대한 공헌도와 정당 및 당 지도부에 대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공무원을 임용하고, 정권이 바뀌면 이들을 교체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엽관제 하에서는 행정책임의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계급적 배정과 무관하게 정당에 대한 봉사나 정치적 후원을 기준으로 공무원을 임용해 통제력을 강화하던 잭슨 대통령의 인사제도가 공무원에 대한 행정수반의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엽관제는 정무직 공무원들이 정치와 정책을 주도하고 행정 공무원들은 전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엽관제는 정부 관료제의 민주화와 정치적 통제력의 강화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부연 설명 해드리면, 공무원의 빈번한 교체를 전제로 하는 엽관제는, 공직이 일부 계충의 전유물이 되어 일반국민들과 괴리된 권력집단이 되는 것을 막고, 공직 개방을 통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누구나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관료제의 민주화에 기여했습니다. 

또한 엽관제에서 집권 정치인들은 공무원들의 충성심을 학보하고, 그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통제ㆍ통솔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엽관제의 부작용

엽관제가 확대됨에 따라 다음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첫째, 정당 기여도나 충성심은 높으나 업무 수행 역량이 부족한 사람들의 공직 진입이 확대되어 행정의 능률성이 저하되었고, 정치적 논리에 의한 불필요한 관직의 종설로 인해 재정의 낭비가 증대되었습니다. 

둘째, 정권교체에 따른 공무원 교체가 수시로 발생함에 따라 행정의 안정성과 전문성이 손상되었으며, 사업의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셋째, 정당과 명운을 합께 하는 공무원들이 선거과정에 깊이 개입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객관적이고 투명한 업무수행이 어려워졌으며, 공직의 부패가 조장되었습니다.

실적제의 등장과 부작용

이러한 엽관제의 문제점을 배경으로 하여, 윌슨을 비룻한 1880년대 미국 진보주의 운동의 일파는 정치와 행정의 개혁을 주장하였으며, 그 핵심은 공무원의 임용과 관리를 정치과정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공직의 운영에 질적제를 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적제는 1883년 펜들턴법이 통과됨으로써 미국 연방정부에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실적제를 구체화하기 위한 수단은 인사위원회의 설치, 공개경쟁시협에 의한 공무원 채용, 공무원의 정치헌금 제공과 정지활동 금지 등이었습니다.

실적제는 공무원 조직의 운영에서 당파정치의 영향력을 배제함으로써 정치권의 권력 남용으로부터 공직사회를 보호하고, 공무원의 재직권을 보장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이에 따라 행정의 계속성과 전문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실적제도 아래의 문제점들 때문에 1930년대 중반 이래 그 타당성이 재검토되어 왔습니다. 

실적제의 단점은, 첫째 인사규칙에 대한 강조로 인해 인사행정의 획일화와 문서주의를 심화시켰으며, 

둘째 공무원의 컬익보호에 치중하여 인력운영의 비탄력성과 행정의 비대웅성을 강화하였고, 

셋째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산층 이상의 남성에 유리한 체제로서 소수민족과 여성의 낮은 대표성이 나타나며, 

넷째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다는 것 등입니다. 

특히 행정의 대응성이 약화되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 장관, 의원 등 정무직 공무원들이 행정 관료의 임면을 직접적으로 제어하지 못하게 되어, 후자에 대한 전자의 통제가 약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행정 관료들이 집권자들의 정책방향으로부터 유리되고 국민의 요망에 무감각하게 되는 경향이 조장되었습니다. 

미국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행정통제의 문제는 결국 '실적제'와 '정치의 우월성'이라는 두 요소 간의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의 쟁점으로 귀착됩니다.

실적제와 엽관제의 네 가지 가능성

이 두 요소 - 실적제의 정도, 정치 우월성의 정도- 를 교차시키면 네 가지 가능성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 가능성은 실적제의 정도가 높으면서 동시에 정치의 우월성이 유지되는 것으로서, 고전적인 행정 개념을 대변하는 관점입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실적제의 정도가 높지 않고 정치의 우월성도 유지되지 않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가능성은 두 요소 중 하나씩만 성립되는 상태로서, 실적제의 정도는 높으나 정치의 우월성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와 실적제의 정도는 낮으나 정치의 우월성이 높은 경우입니다.

이처럼 행정통제의 문제는 다차원적인데, 현실세계의 전개는 엽관제로부터 고전적 행정 개념으로 전개되기보다는 행정국가로 진행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나아가 실적제의 정립에도 불구하고 정부 관료제의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현상을 나타냈습니다.